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츠 2세 (문단 편집) ===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 후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레오폴트 2세]]가 되는 [[토스카나 대공국|토스카나 대공]] 레오폴도 1세와 [[스페인]]의 마리아 루이사의 아들로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백부 [[요제프 2세]]가 아들이 없기에 일찍부터 첫 아내인 [[뷔르템베르크의 엘리자베트]][* 일찍 사망해서 황후는 되지 못했다. 이후 장가를 세 번이나 더 갔다. 아버지 프리드리히 오이겐 공작은 [[프로이센군]] 육군 대장으로 [[7년 전쟁]]과 [[바이에른 계승 전쟁]] 당시 [[프리드리히 대왕]]과 함께 싸웠다. 참고로 언니는 [[러시아 제국]] [[파벨 1세]]의 황후인데 그녀의 언니를 황후로 추천한 사람 역시 [[프리드리히 대왕]]과 [[예카테리나 2세]]다. 거기다 이 사람의 외가 쪽으로는 외할아버지는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손자'''고 외할머니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여동생'''이다. 이모들 중 하나는 심지어 숙질혼을 해서 프리드리히 대왕의 남동생인 페르디난트 왕자와 결혼하는데 이 사이의 아들이 나폴레옹 전쟁 당시 주전론을 강력히 주장하다가 정작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벌어진 잘펠트 전투에서 전사한 프로이센 지휘관인 루트비히 페르디난트 왕자다. 거기다가 남자 형제 중 넷이 군대에서 복무했는데 오빠 셋은 '''프로이센 육군 대장'''이고 동생 하나만 [[황제군|오스트리아군]]이다.]와 함께 10대 초반부터 [[빈(오스트리아)|빈]]으로 불려와 후계자 교육을 받았다. 1792년 아버지가 죽자 [[합스부르크 제국]]을 물려받았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되어 [[프랑스 혁명]] 문제를 떠맡게 되었다.[* [[토스카나 대공국]]은 동생이 물려받아 [[페르디난도 3세]]로 즉위했다.] 그러나 즉위한 해, 아버지 [[레오폴트 2세]]가 죽기 전까지 [[마리 앙투아네트]]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 제1공화국|프랑스 혁명 정부]]와 벌이던 석방 협상을 중도에 그만 두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처형당했다. 이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반 프랑스 정책을 펼쳐서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을 지원했으나 희대의 먼치킨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에게 줘터지는 바람에 1797년 캄포포르미오 조약으로 [[롬바르디아]]와 [[라인 강]] 서안의 제국 영토를 상실했다. 그 이후로도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간 사이에 제2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고 [[러시아 제국]]의 [[알렉산드르 수보로프]]와 함께 잠시 선전하기도 하지만 1799년 러시아가 이탈하고 나자 결국 굴복하고 1801년 뤼네빌 평화조약을 맺고 라인강 서안과 [[이탈리아 반도]]의 영토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캄포포르미오 조약(1797)과 뤼네빌 평화조약(1801)의 대가로 기존 신성 로마 제국은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되는데 '''라인 강 좌안의 기존 신성 로마 제국 영토는 모두 프랑스에 합병되고''' 기존의 제후들은 라인 강 우안에서 영토적 보상을 할 것이란 합의를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자신이 승인한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자신이 황제로 있는 제국의 서쪽에 위치한 제후들 영지를 몽땅 프랑스에게 바치고, 이 과정에서 영지를 잃어버린 제후들은 니네끼리 알아서 보상을 해주든 말든 하라 이거였다. 물론 황제 체면은 땅에 떨어졌고 주교령, 제국 기사령 등 황제가 이제껏 영향력을 행사한 제국 내 영토들은 사실상 싹 사라지고 '''영토 보상을 받은 제후들마저 몽땅 프랑스 편으로 붙어 버렸다.''' 거기다가 황제 선거권이 있는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들 중에 라인 강변의 성직제후 [[마인츠 선제후국|마인츠]], [[트리어 선제후국|트리어]], [[쾰른 선제후국|쾰른]] 선제후가 없어졌다. 나폴레옹이 사실상 독일의 주인 행세를 하며 오스트리아 코 앞의 제국도시 [[레겐스부르크]]에서 '독일 제국 대표자 회의'를 열어서 기존 없어진 선제후[* 프로이센은 1795년 바젤 평화조약으로 일찍 물러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영국]]과 [[동군연합]] 중인 하노버의 점유를 허가 받았고 [[하노버 선제후국]]도 사실상 없어졌다. 그런데 정작 프로이센은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오스트리아 대공국-보헤미아 왕국과 함께 남았다.] 4개 자리를 대신하여 자신의 꼬붕들이자 위성국가들을 멋대로 선제후로 삼아버렸다. 구체적으로 오스트리아 몫은 프란츠의 동생 [[페르디난도 3세]]가 다스리던 [[토스카나 대공국]]이 프랑스에 합병당해 [[에트루리아 왕국]]이라는 괴뢰국이 되면서 잘츠부르크 대주교령을 선제후 겸 대공국으로 승격시켜 토스카나를 잃어버린 페르디난도 3세에게 대토보상으로 주었는데 그치고 나머지 5개 선제후들은 바덴[* 라인 강변 서안 영토를 조공으로 바치고 종이 호랑이 신세가 된 옛 주인 오스트리아의 역외 영토인 외지오스트리아(Vorderösterreich)를 포함하여 라인강 우안 8배의 대토보상을 받아서 가장 출세했다.]은 대공국으로 승격. 뷔르템베르크, 레겐스부르크, 헤센-카셀 역시 프랑스의 위성국이었다. 바이에른과 작센[* 뷔르템베르크, 작센, 바이에른은 역시 나폴레옹에 줄선 대가로 나폴레옹의 강요를 받아 프란츠 2세가 왕국으로 승격하는 데 동의했다. 프로이센이야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인한 특수 사례라 쳐도 제국에 왕국령을 여럿을 승인한 것은 사실상 제국은 끝났다는 이야기.]은 역시 프랑스에 줄을 서 선제후 자리 중 과반수가 프랑스의 위성국이었으며 마지막으로 기댈만 한 프로이센 역시 영국이 동군연합 중이던 하노버를 집어삼킨 후 쭉 중립으로 일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직 황제인 프란츠의 손을 들어줄 선제후는 프란츠 본인이 들고 있는 보헤미아 국왕과 동생이 얻은 잘츠부르크 대공, 달랑 2장밖에 없었기 때문에 유사시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제직 승계는 이미 물건너 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